오전 비행기라, 이른 시각 나갈 채비를 마친다. 일단, 언니가 부탁한 스타벅스 시그니쳐 머그컵 하나 사오고는, 호스텔 직원 패트릭에게 부탁해 우버를 부탁했다. 내 폰을 못쓰니까 너꺼로 좀 불러주려무나, 현금으로 너에게 줄게, 오케이 딜! 그러곤 기재된 금액만 받으려는 걸 반올림해서 넉넉하게 챙겨 주었다. 이제 공항으로 가볼까?

 

패트릭 덕분에 만난 우버 기사 알로아는 동양계 미국인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주민으로 주위 다른 미서부지역과 다른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제법 괜찮은 대화가였던 알로아는 각 국의 생활 이야기로 시작해, 내게서 자연스레 인도네시아에서의 일 이야기를 풀어내게 만들었다. 일에 대한 흥미도 없고 왜 해야하는 지도 모르겠으며 내 의지나 생각없이 지내고 있다, 그 곳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에 현재 6개월째 긴 휴가 중이다, 그러던 중 어쩌다 친척 일 도우러 미국에 왔다가 이렇게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하고 말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뻔히 보이는 답을 두고 당시의 나는 우울함을 늘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알로아는 진지하게 경청하여 주었고, 내 인생이니 내가 중요하다고 했다. 싫으면 하지 말아라! 가지 마라!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대답은 그럴 수 없다 였다. 현재,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었지만. 그러곤 모든 것이 술술 풀렸지만 말이다. 신기하다.

여하튼,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공항까지 가는 20여 분간 지난 3년을 돌이켜 보게한 알로아와의 대화는 좋았다. 무사히 공항에 도착 후 포옹 후 서로를 응원했다.

 

그렇게 공항에서 짐도 한 번에 부쳐버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출동.

잘 익은 아보카도에 사워크림 곁들인 멕시칸스타일 오믈렛 핑크 레몬에이드. 미국에서 왠만한 음식들이 다 맛은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1/3정도 밖에 못 먹고 다 남기는 게 함정.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우고, 폴과 통화도 하고, 비행기 탑승!

 

혼자일 때보다야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참 의미있단 걸 느낀 지난 한 달 이었다. 출국날부터 느낌적인 느낌이 좋았었는데, 그 느낌 그대로 이렇게 귀국날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다.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다 좋았고,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만 가득한 여행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안녕!

 

 

어제 야꼬짱과 얘기나누다 늦은 시각 잠들었는데 반해, 새벽에 눈이 떠졌다. 4~5시쯤, 뒤척이다 바로 일어나 숙소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내 사랑 치즈 오믈렛. 레귤러 커피까지 곁들이니, 새벽 어둠과 함께 잠이 사라져갔다. 기분좋은 아침이야!

 

야꼬짱이 추천했던 근처 공원을 좀 걷다가 근처 카페를 들어간다. 오늘도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약간 흐리고 쌀쌀했기에 라떼를 주문하는데, 와 여기 카운터 직원 맘에들어, 내 이름을 듣고는 한 번에 스펠까지 완벽하게 맞춘 사람은 미국한국 통틀어 너가 처음이야!

개인적으로 여기 라떼가 블루보틀보다 훨 나았다. 우유거품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부드러운 우유거품이 가득한 이 곳 라떼, 맛도 좋다. 부드러운 라떼를 마시며 샌프란시스코의 애견가들을 그려본다.

 

 

내친김에 어제 그린 구스아일랜드 채색도 하고.

그러고는 졸려, 다시 숙소가서 눈 좀 붙였다가, 공원산책만 줄줄이 나간다. 돌로레스 공원에서 아이스크림먹으며 잔디밭에서 강아지들 사람들 구경하다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마지막 저녁 식사자리, 랄리의 신애 추천, 이자카야 쏘자이로. 오늘도 어김없이 6시, 야꼬짱과. 여기에선 와이파이 없인 폰이 무용지물인데, 야꼬짱은 이 날 새로운 숙소로 옮겼기에 구두로만 가게 앞에서 보기로 약속 한 터라, 먼저 도착한 나는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두근두근, 시간이 지나도 연락불가능하니 무슨일이 생긴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 두근두근, 굉장히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했다. 미리 웨이팅에 이름 써 놓아 자리가 났어도 아직 친구 기다리는 중이다, 오는대로 자리해달라 사정도 얘기해놓고, 오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 시간은 기다려야지~했는데 45분 즈음 지나니 이래저래 헤매는 야꼬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올 줄 알았어. 이렇게 보니 더 반가웠다.

 

일본인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 저녁을 이자카야에서!

메뉴가 일본식 이름을 영어로 표기되어 있었기에, 야꼬짱의 지휘 하 주문이 이루어졌다.

 

 
사케까지 곁들여. 전반적으로 맛은 무난.

라멘! 사실 기대 이하였지만, 배가 고팠기에 맛있게 먹었다. 삿포로 출신 야꼬짱 입맛에도 무난한 정도. 나중에 삿포로로 오면 제대로 된 사케와 음식들을 대접해 주기로 했다. 응 꼭 갈거야 ,나.

좁은 실내인데 사람들이 가득차고 웨이팅이 끊이지 않았던, 이자카야 소자이. 미국인 입맛엔 이정도의 일식이 제법 괜찮은 가 보다.

 

어두워졌으니 얼른 움직여야겠다. 야꼬짱은 새 숙소 분위기가 이상하다며, 얼른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맘에 같이 가봤더니 붉은 조명의 야릇한 분위기의 코스튬 플레이스 내 입구가 있는 독특한 숙소였다. 방에 같이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다행히 룸메들은 상태가 양호해 보여서 그제서야 둘다 안심하고 바깥 로비로 나왔다.

다소 부산스러웠지만, 아까 돌로레스 공원으로 가는 길에 들렀던 마트에서 산 마카롱을 꺼내 나누어 먹으며 짧은 담소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 매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면에서 참 잘 통했던 동갑내기 친구.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마음이 여린 야꼬짱은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조그만 선물을 내밀었다. 으잉 고마워. 지금은 헤어지지만 우리 또 만날거야, 계속 연락해!

 

숙소로 돌아와 풀어보니 일본감성 물씬 풍기는 꾸러미였다. 진심 가득한 손편지에 감동! 나는 오늘 새벽부터 나와 설쳤으면서 왜 이런거 하나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런 마음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밤은 지나간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세 번째 하루. 야꼬짱과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오늘도 오후 6시 숙소에서 만나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후 각자 갈 길을 향했다. 음, 그다지 딱히 할 일이 없는 나는, 오늘 하루 별 생각 없이 편하게 돌아다녀보기로 한다.

 

우선 패쓰권을 써서 오는 케이블카나 버스, 전철 따위를 타는 거다. 그리고 괜찮아 보이는 곳에서 내려 구경하면서 천천히 또 빠르게 걸으며 산책한다. 배가 고프면 근처 유명한 혹은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이나 카페에 들어가서 메뉴를 열심히 살펴본다. 진짜진짜 먹고싶은 무언가를 주문한다.(엄청 중요함!) 마음껏 음미하며 먹는다.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을 구경한다. 흥미가 있는 장면을 캐치한다. 눈으로든 마음으로든 사진으로든 그 어떤 방식으로든, 내 기억 속에 담는다. 그러고는 또 나와 걷다가 교통 수단을 이용해 이동했다가.. 하면서 반복하는 거다. 내 여행 방식이다. 딱히 별 다른 계획 따윈 없다. 시간이나 일정에 쫓기는 게 뭔가 숨막혀서, 그냥 큰 틀 내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게 좋다.

 

블루보틀 커피를 마셔볼까? 숙소에서 15분 정도 걷다보면 위치한 블루보틀 커피를 향한다. 뉴올리언스 라떼가 유명하지만, 오늘은 쌀쌀하니 따뜻한 라떼를 마시겠어.

우유 거품에 구멍이 뽕뽕난 게, 스티밍이 별로.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할듯? 맛 또한 무난한 라떼였다. 그래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라떼로 몸을 녹이며 펜을 꺼내 작업을 시작해본다. 샌프란시스코로 오기 전 날, 폴이 사준 구스아일랜드 보틀을 슥슥 그려나갔다.

흠! 컨디션이 좋으니 슥슥 그려진다. 좋아좋아. 만족스러워. 그리고나서는 찬찬히 주위를 살핀다. 크고 둥근 원형 테이블에 자리했었는데, 내 양 옆으로 재밌는 분들이 보이길래 슬쩍 캐치하곤 자리를 떴다.

버스 처음 타본다. 지금 시간대는 한가한 편. 패스권이 있어도 기사들이 보통 확인을 잘 안해서,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같다. 복불복으로 패스증 보여달라 하면 그때 차비만 내도 패스권보다 저렴할 듯. 그냥 그렇다구~

피셔맨스워프에 있는 보딘의 크램차우더가 맛있다고 랄리에서 만난 신애가 그랬었다. 점심은 거기서 먹어봐야지.

페일에일도 함께. 신 맛이 나는 빵은 처음 접해보는 맛이었다. 신기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닌걸로~ 그대로 남겼다. 스프는 싹 비웠지만.

 

그러고는 걷고 또 걷는다. 어제 봤던 익숙한 풍경도 새로워 보이는 설렘가득한 이 기분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겠지.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야꼬짱과 다시 숙소주변 맛집 탐색에 들어간다. 어딜갈까? 오늘도 추진하는 건 나다! 시어스 파인푸드, 구글 평점이 나쁘지않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웨이팅도 즐겁다. 여자들의 대화는 끝이 없기에. 20분 정도간의 비교적 짧은 웨이팅 끝에 자리하여, 기분좋은 친근한 웨이터의 안내로 야꼬짱은 포크 스테이크, 나는 오늘의 스페셜 디너메뉴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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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미국식 레스토랑이다.

주문한 샐러드부터 나오고,

미국 샐러드는 어쩐지 맛이 덜하다. 여기서는 특히 오이! 크기만 크고 속이 실하지 못하달까? 각 재료으 고유의 맛이 잘 안나. 야꼬짱도 나도 각자 우리나라의 야채가 훨씬 맛있다고 하며 에피타이저로 비타민을 섭취했다 아삭아삭.

우와 고기덩어리 엄청 커! 그리고 소스 색도 맛도 신기해. 스페셜 디너다운 비쥬얼이야. 맛보고는 야꼬장과 나 둘다 "시어스 파인 푸드, 진짜 파인 푸드다!" 했다. 음식 맛이 좋았다. 맛, 가격, 질, 분위기, 서비스까지 모두 전반적으로 fine했다. 그렇게 오늘 저녁도 우리 둘다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소스까지 싹싹. 그러곤 당연하단 듯, 말없이 향한 스타벅스.

 

그 곳에서 이어지는 대화. 한국이나 일본이나 20대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은 비슷했다. 이 나이대는 다 비슷한가보다. 그냥 뭐 할지 모르겠고, 막막하고, 그러면서도 우연한 계기로 무언가를 하게 되고, 선택을 하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지고.. 거기에 우린 성격에 제법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그 때문에 일어나는 고민거리들이 많았고, 그 역시 비슷했다. 그렇게 열 두시가 넘도록 우리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다음 날 야꼬짱이 체크아웃하기 때문에 같이 방을 쓰는 마지막 밤이었고, 그래서인지 우리 둘 다 이 곳에서의 하루를 더 놓치기가 싫었나보다.

 

 

여섯시 정각 세이프, 숙소에 돌아와 보니 이미 대기중인 야꼬짱이 웃으며 반긴다. 일단 로비로 나가 쇼파에 걸터 앉아 메뉴를 정하기로 한다. 뭘 먹어볼까? 언제나 메뉴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게다가 일본인 특유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덕에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이거먹을까? 하면 응! 저거먹을까? 하면 그래! 하는 야꼬짱.. 이대로라면 메뉴 정하는 데만 한시간 넘게 걸리겠어서 추진력을 발휘했다. 그래 그럼 첫 식사니 무난하게 치즈케이크팩토리로 가자! 파스타랑 치즈케이크 싫어하는 여자는 못봤으니까. 이동하면서부터 대기할 때 까지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브리핑했다. 그러고선 자리에 앉자마자 사진에 부연설명을 덧붙여 본격적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갔다.

식전빵이 나오고, 셀피 짠!

 

야꼬짱의 Pasta Napolitana & 내가 주문한 Tuscan Chicken.

토스카나 치킨, 맛있었다! 치킨필렛에 토마토, 아스파라거스까지 팡팡 들어가니 간 조절만 조절한다면 다이어트식으로 딱 인듯. 야꼬짱은 오늘 하루종일 숙소를 알아보았지만 맘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 곳 숙박비가 만만찮기 때문에, 하루 빨리 남은 6개월 남짓 머물 거처를 구해야 할텐데.. 지인 하나 없는 땅에 와 혼자 집을 구하다니 대단하단 생각만 든다. 야꼬짱이나 나나 오늘 하루종일 많이 걸어서인지,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우리 어쩐지 입맛이 비슷한 것 같아!

 

첫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혹시 알코올 좋아해? 같이 한 잔 할까? 하고 바에 들러보지만,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바로 '나갈까?' 눈빛교환 후 탈출에 성공한다. 우리 이런과는 아닌가봐, 허탈한 웃음과 함께 스벅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커피로 맞이하는 밤, 여태까지 가벼운 일상 얘기 정도만 나누었다면 이제는 신상을 파악해볼 차례. 재밌게도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나이가 같았고, 언니가 있다는 것도 같았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6년 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단 것과 첫 연애를 오래 했었단 것이 같았다. 깊어드는 밤과 함께 우리들의 대화 소재는 다양하게 번져갔다. 일 얘기, 사는 얘기, 사람 얘기, 자연스레 연애 얘기, 사랑 얘기, 인생 및 가치관 얘기.

세계 어느 곳이건 기본적으로 인간은 남과 여로 구분된다. 물론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각 성별과 나이대별 비슷한 감성이 있다고 보는데, 우리는 이게 좀 잘 맞았다. 완벽하지 않은 언어지만 소통하는 데 사전따윈 필요없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교감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두번 째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들었다.

 

 

 

금문교 입구.

거대한 붉은빛 다리 아래 유유히 지나가는 페리.
여기가 바로 금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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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입구 쪽 조금 걷는다는 게 어느새 1/3 지점까지 오게 되었다. 가는 방향이 태양을 등지고 있었기에, 다시 돌아가자니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다리 끝까지 걷게 된다. 초행길이지만 주변에 다른 자전거 탄 이들, 걷는 이들이 있어 외롭지는 않다!

그렇게 다리 건너편에 도착해서는 혹여나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까짓것 이렇게 된 거 소살리토까지 걸어가 보자! 소살리토 방향으로 난 갈림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리 중반 즈음부터 나랑 서로 앞질렀다 뒤처졌다 하며 걷던 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내 눈빛을 읽었는지 Bruce는 바로 저기로 가면 소살리토라며, 본인도 그쪽으로 간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Bruce와 소살리토까지 함께 걷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주민 Bruce는 직업 군인이었는데 10여 년 전 심장질환 진단을 받고서 일을 그만두고 매일 금문교를 건너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꾸준한 운동과 식습관 관리 덕에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지만, 걷는 습관을 지속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하게 나와 마주한 것이다. 예술 문화에 관심이 많은 Bruce는 걸어가는 내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뮤지컬이나 공연 관련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 외에도 주민으로서 추천할 만한 관광지 및 로컬 맛집, 소살리토에서 건너편으로 돌아가는 페리 이용 팁까지 이것저것 잘 알려주었다.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소살리토에 도달했다. 슬슬 점심을 먹어야겠는데 바다를 마주한 메인 거리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가 여러 식당을 지나쳤더니 Bruce는 소살리토의 구 중심가(Old downtown)로 이끌었다.

시끌벅적한 메인 거리에서 걸어서 불과 5분 정도 떨어진 구 중심가에는 관광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한적한 거리를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눈에 띄는 가까운 카페를 골라 들어갔다.

카페 내부는 바, 레스토랑, 카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컨셉에 따라 인테리어가 다르게 이루어져 있었다.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좌측 안쪽이 레스토랑 공간이고, 테라스도 있다. 우리는 날씨가 좋아서 입구 쪽 야외 테이블로 향했다.

주문한 연어 샌드위치가 나오고, Bruce와 기념사진 한 방!

셀피가 처음이라 신기해하고 멋쩍어하며 웃는다. Bruce는 걷기 전 이미 식사를 한 터라 따로 먹진 않았지만 나의 식사 자리에 함께 해 주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그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박찬욱 감독과 배우 최민식 관련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 영화 얘기를 꺼내며 박찬욱 감독을 안다며 '올드 보이'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얘기도 하고 자연스레 배우 최민식 얘기로 넘어오더니, '악마를 보았다'를 언급했다. 스칼렛 요한슨과 찍은 할리우드 작 '루시' 얘기도 하고, 전직 군인이었기에 전쟁에 관심이 있었던지 '명량'까지 알더라! Bruce는 맡은 다양한 역할을 뛰어나게 연기하는 최민식을 극찬했다. 처음 만난 외국인과 한국의 문화콘텐츠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상당히 재밌었고,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어느 할아버지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며, 식사가 끝나고도 삼십 분 가량 더 앉아서 대화를 이어갔다. 어김없이 다가온 헤어져야 할 시간, 샌드위치 잘 먹었어 고마워! 그리고 만나서 정말 즐거웠어! 악수하고 손을 신나게 흔들어 보였다.

자, 이제 다시 메인 거리로 나가볼까?

 

 

후식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스러운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맛 젤라또를 먹으며 바다가 보이는 공원으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며 달콤한 젤라또 한 입, 고개 젖혀 하늘을 보며 또 한 입. Paradise is where I am. 내가 있는 곳이 지상낙원. 여기도 닭둘기들이 참 많았는데, 먹고 난 젤라또 콘 부스러기를 조금씩 던져주며 '나 홀로 집에 2'의 비둘기 아줌마 코스프레를 했다.

한껏 여유 부리다 이제 진짜 돌아갈 시간. Bruce랑 얘기하느라 소살리토 구석구석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원래 여행을 일상처럼 주의라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다음 기회엔 조금 더 여유 있게 돌아보도록 할게, 소살리토 안녕! 그러곤 나는 야꼬짱과의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둘째 날.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7시 30분경. 어제저녁 늦게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중국인 룸메는 이미 나가고 없었고, 영국인 룸메도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던 참이다. 그 친구는 오늘 알카트라즈를 간다고 한다.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는 조금 더 밍기적 대다가 마지막 타자로 씻으러 들어갔다. 외출 준비 완료 후 그때까지 같이 있던 야꼬짱과 같이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메뉴가 다양했는데, 난 커피 한 잔에 오트밀, 오렌지 몇 점과 바나나 반쪽을 집어 들었다. 다른 건 다 평타 치니까 패스하고 과일이 싱싱해서 만족스러웠다. 역시 오렌지는 캘리포니아산이지! 야꼬짱은 오늘 앞으로 이곳에서 장기간으로 머물 숙소를 찾으러 나간다고 했다. 나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건너 소살리토(Sausalito)를 다녀올 예정이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저녁 약속을 위해 여섯 시까지 숙소에서 보기로 한 후 각자 갈 길을 향했다.

 

슬슬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카를 타러 가볼까? 날씨가 화창해서 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기분이 한껏 들떴다. 도착하자마자 케이블카 다가오길래 럭키! 폴짝 올라타 기둥에 매달렸다.

케이블카 타고 셀피 한 장. 앞에 앉아있던 커플에게 부탁해서 또 한 장.

매달려서 주변 구경하며 가는데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진다.

아슬아슬 내리막길 좁은 구간 주차하는 차량을 끝까지 기다려주는 케이블카 기사님. 한참을 앞뒤로 오가다가 마침내 주차를 마쳤을 땐 승객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운전자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로 답례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유쾌한 광경이다.

처음 향한 곳은 꼬불꼬불하고 예쁜 길로 알려진 롬바드가(Lombard Street)의 러시안 힐(Russian Hill).

걷기가 부담스러워서인지 내리는 사람은 대여섯 명 채 되지 않았다. 뭐, 나는 걷는 게 좋으니까 고민 없이 하차. 언덕 위에서 바다를 품은 마을을 향해 탁 트인 전망을 보니 히사이시조의 '바다가 보이는 도시'가 귀에 맴도는 듯하다.

중국인 단체 중 한 할머니아주머니가 혼자 사진 찍으려 고군분투 중이시길래 다가가 찍어드리곤, 나도 찍어주세요~ 바디랭기지 통해 찍힌 사진. 서로 찍어준 사진을 확인 후 둘 다 맘에 들어서는, 미소 가득 머금고 감사합니다~! 셰셰~! 자기네 언어로 연신 꾸벅거리며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나눴다. 그분을 둘러싼 일행분들이 옆에서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내리막길, 집들이 하나같이 그림 같다. 색감도 너무 예쁘다.

그렇게 언덕을 모두 내려오고,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Palace of Fine Arts)로 가야 하는 데 방향감각을 잃었다. 와이파이 없인 카메라에 불과한 폰을 들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반려견과 산책 중인 한 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인상 좋은 롬바드 가의 David는 바로 지도 어플을 켜서 현 위치와 가는 방향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러는 동시에 조금 돌아가지만 바다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가 좋다며 추천해주었다.

오호, 나 걷는 거 완전 좋아해! 고마워!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까?

그래, 그럼 우리 개도 같이 찍을까?

헤헤, 해맑게 웃는 우리들과 달리 어쩐지 기운 빠져 보이는 18년 먹은 멍뭉이. 그렇게 바이바이하고 나는 David가 알려준 Beach Street를 따라 열심히 걷기 시작한다.

걷다 마주한 멕시칸 컬러 가득 거리 한 컷. 코카콜라 트럭과 횡단보도, 행인 1's 티셔츠의 콜라보로 더 돋보이는 레드&화이트&그린의 조화.

깔끔한 복장에 에코백을 든 할아버지.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귀염귀염 해서 천천히 뒤따라 걸으며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바다를 따라 쭉 뻗은 사 차선 도로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보행로+자전거도로, 그 옆에 드넓게 자리한 잔디밭. 저 앞에 금문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기자기한 장난감 같은 집들. 비슷한 모양의 집은 찾기 힘들다. 설렘 가득한 산책은 계속되고 드디어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 도착!

 

호수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건축물. 건축물을 가로질러 가는 길도 있지만 난 측면의 산책로로 걸었다. 이곳은 미국보다는 유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했다. 여기서 웨딩 촬영 중인 커플도 여럿 봤다.

산책로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이 동네 사람들이 어쩐지 부러워진다.

 

약 두 시간 가량의 산책을 마치고,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금문교를 향했다. 사실 금문교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편하게 건너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소살리토행 버스 번호와 탑승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버스를 타고 금문교 입구에서 내리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약 한 달 간의 노동을 마치고 다시 나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로 더운 날씨였는데 갑자기 밀려온 꽃샘추위에 눈비 내리고 영하까지 떨어지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막힌 타이밍에 나는 따뜻한 캘리포니아로 이동한다.

국내선으로 5~6시간 비행에, 5시간의 시차. 이동하는 데 바깥 풍경도 시시각각 바뀌는 게 재미있다. 정말 넓구나 이 나라 땅은.

 

전철을 타고 공항에서 파웰 역으로 온 다음, 숙소로 무사히 이동 완료.

일단 배고프니 짐 맡겨두고 밥부터 먹자,

근처 허니허니(Honey honey)라고 구글맵 평점이 나쁘지 않은 곳이 있길래 거기서 캘리포니아 샌드위치+코카콜라를 주문했다!

맛이 깔끔해서 좋았다. 프렌치프라이도 기름기 적고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 이런 프렌치프라이라면 매번 먹고 싶을 것 같음. 기분 좋게 첫 끼를 해결하고 나와 유니언스퀘어 쪽을 쭉 거닐어본다. 그러다 필즈 커피(Philz coffee)를 발견하곤 들어가서 댄싱 워터를 주문했다. light 하대서 고른 거였는데 굉장히 진해서 카페인이 세포 하나하나 스며들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이었다. 전날 랄리에서 카페 투어 한다고 카페를 세 군데나 들려 커피를 마셨어서 그런지, 그날따라 커피가 더 안 받는 기분이었다. 바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차이나타운이 눈에 띄어 쭉 걸으며 훑어보았다.

 

진했던 커피 탓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왔다. 바로 숙소로 돌아와 체크인 후 씻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보니 룸메가 하나, 둘 들어왔지만 제대로 인사할 정신이 아니었다. 다시 일어난 시각이 저녁 7시 즈음. 속도 괜찮아졌고 배도 출출 허니 이제 슬슬 저녁을 먹으러 나가볼까? 내 침대 맞은편의 귀여운 친구랑 눈이 맞아 인사했다. 일본인이었고 야꼬라고 부르란다. 간단하게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혹시 저녁 먹었느냐고 물어봤더니 아쉽게도 먹었단다. 그러더니 내일같이 저녁 먹을까? 하고 되물어오길래 그래! 바로 약속 잡아버렸다. 그리곤 밥 먹으러 슝.

 

숙소 근처 구글맵 평점이 괜찮은 일식집 Ryoko's Japanese restaurant를 봐두었기에 거기로 갔다. 대기 줄이 엄청났지만, 그래도 먹을 거야. 실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그래서 테이블끼리 간격이 너무 좁아서 직원들조차 사이사이를 다니기 힘들어 보였다. DJ가 디제잉도 하고 분위기는 시끌시끌했다. 20분 정도 기다렸나? 나는 혼자이기에, 바에 자리해 좀 더 빠르게 앉게 되었다, 유후.

 

사시미 디너세트에 굴 튀김. 사시미 세트엔 저렇게 밥공기와 미소가 같이 나왔고, 굴 튀김에는 데리야끼 소스&계란으로 만든 소스 두 가지 소스가 나왔다. 사시미는 그럭저럭 먹을만한 정도. 굴 튀김은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맛이었다. 어느 소스와도 잘 맞았다. 음! 낮에 아파서 골골 됐던 기분이 싹 가시면서 컨디션이 다시 좋아졌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좁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라 나랑은 좀 안 맞았다. 하긴 관광지에서 한적한 곳 찾기가 쉽겠나. 차라리 다른 사람이랑 같이 오면 좀 다르려나?

먹고는 큰 길 위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밤길은 색달랐다. 어두워진 거리를 걸으며 맡는 밤공기가 참 좋다! 고 말하고 싶지만 샌프란시스코 거리나 골목 곳곳에는 가끔 한 번씩 코를 쏘는 굉장히 불쾌한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지? 쓰레기나 뭔가 썩는 냄새랑은 좀 다른데, 너무너무 고약해서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리고 큰 길가가 아닌 곳엔 노숙자들이나 포스가 느껴지는 패거리들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멋모르고 다니다가 숙소 직원이 조심하란 게 이런 의미였구나 뒤늦게 깨달으며 엄청 쫄았다. 말 걸어도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을 하며 축지법으로 후다닥 돌아왔다. 우리 방 룸메들은 너무나 착실했다. 10시도 안 되었는데 모두 잠자리에 들어있었기에, 나도 얼른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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