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호주온 지 5년차, 시간 참 빠르다.
연말 새해 이 즈음되면 꼭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지난 2023년 나는 어떻게 보냈는가?
1-3월 :
이전 해 9월부터 2월까지 6개월간의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을 수료 후 호주온 지 3년 4개월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약 3주가량 머물면서
코비드 때 태어난 조카도 처음 만나고,
가족여행도 다녀오고,
우연한 기회로 대학때 연구실 선후배들도 만나고,
3년전 호주에서의 하우스메이트 동생,
호주에서 통화로만 수업했었던 인도네시어어 학생,
그림모임 친구, 고딩 동창 등 다양한 지인들 부지런히 만나고 왔다.
친구도 많지 않은 편에 늘 떠돌아 살던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나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전반적으로 한국에 관광 온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러고나서 호주 돌아와 집으로 오는 우버 안,
그냥 마음이 편하더라. 드디어 내 집에 온 듯한 기분.
그러고 확인한 호텔 스케쥴.
메인으로 일하던 호텔에서는 아웃되어 있었고,
기존 호텔 데이비드가 바 시프트 가능하냐고 문자남겨 놨더라.
그렇게 타당한 이유없이 게이밍 매니저는
내가 한국에 가 있고 레이센시가 바뀌는 틈을 타
나를 팀에서 쫓아낸 상태였고,
새로 온 라이센시는 그 매니저 말만 듣고 날 내쳤다.
당시에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호주 도착 바로 다음 날 오후, 찝찝한 기분을 뒤로한 채
운동을 다녀왔고,
한국 가기 전부터 계속 연락이 이어져온
브라이언과 첫 데이트를 했다.
기대와 달리 당시 별다른 분위기는 없었다.
곧 필라테스 센터에 연락을 해 보았고
지도자 과정이 끝난 후 내가 바로 한국으로 다녀오는동안
이미 연습을 마치고 수업을 조금씩 활발하게 하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매우 더딘 시작을 하게 되었다.
아, 추천으로 받은 학생과 드로잉 클래스도 시작했다.
그렇게 메인 호텔에서 쫓겨난 설움을
그래도 기존 호텔 게이밍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필라테스 및 드로잉 클래스, 바텐더 시프트도 있으니까.
충분히 잘 하고 있다, 나아가고 있다, 달랬던 것 같다.
4-6월 :
바 시프트, 바텐더 일 적응기.
처음엔 너무 정신없었고 칵테일 만드는 것도 겁났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도 결이 안 맞이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
그러다 곧 적응해 적당히 즐기면서 하는 여유가 생기고, 바 사람들과도 일 끝나고 같이 함께하며 친해졌다.
필라테스도 주 1회 수업 고정만으로도 벅찼기에, 충분히 만족했다.
그러다 드디어 졸업생 비자가 발급되었고,
이 후 본격적으로 홍보글을 올려 드로잉 클래스를 오픈.
주 5-6회 거의 매일 수업을 하다시피 했고,
수업이 끝나면 호텔로 출근하는 일상을 보냈음에도
전혀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브라이언과는 종종 같이 영화보는 사이로 지내다가
내 생일을 기점으로 연인으로 발전했다.
늘어나는 학생과 익숙해서 수월해진 바텐더 일,
오랜만의 연애에 마냥 행복한 유월을 보낸 것 같다.
7-9월 :
유월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 시련이 다시 닥쳐왔다.
새로 들어온 바텐더 애들이 빌런짓을 하며
일하면서 매일매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기존 호텔의 게이밍에서도 매니저 직함을 달고나서
조금씩 이상한 낌새를 보이던 새 매니저가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대놓고 바른 소리를 하던 나는
이번 역시 타당한 이유없이 팀에서 쫓겨났다.
나는 지난 2년 열심히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는데...
말도 안 되는 애들이 매니저가 되서 멋대로 굴고있는데
거기에 대해 터치한 번 안 하면서 나는 이렇게 버려진다?
몇 개월 사이 같은 회사 두 게이밍룸에서 잘린 나는
현 회사에 차갑게 마음이 식었고 완전히 돌아섰다.
드로잉 클래스 학생도 줄고 게이밍 시프트는 아예 없어지고
일이 줄었지만 스트레스와 근심은 커졌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몰라 막막했다.
분명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왜 이기적인 사람들은 멀쩡히 잘만 살아갈까 싶었다.
첫 해고 이후 반 년 채 지나지않아 다가온
두 번째 경고없는 해고는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얼굴에 트러블도 생기고 매일 괴로워하다가
부담으로 자리잡혀있던 필라테스부터 그만두었다.
필라테스 강사, 자신도 없고 효율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나와 맞지 않았다.
운동 자체는 정말 재밌었다.
덕분에 무기력한 삶에 의욕도 생기고, 호주에 더 있고싶은 마음이 생겨 비자까지 받게 되었다.
오랜만에 열심히 후회없이 공부 했고,
나와 내 몸에 대해서 정확한 운동법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건강문제로 우선 2개월 간 쉬겠다고 하고 나오는 데
숨통이 터지던 그 때 다시한 번 확신했다.
‘아, 아니구나!’
그 후 나에게는 매 주 월화수의 공백이 생겼다.
갑자기 텅 빈 시간, 첫 하루의 반나절은
먹고 자고 멍하니 보내다가 ‘일단 움직이자!’
짐에 바디콤뱃 클래스를 다녀왔더니 활력이 다시 샘솟았다.
오는 길 장을 봐서 나를 위한 요리를 해 먹었다.
브라이언으로부터 배운 타이레드치킨커리 였다.
그러고는 다음날 또 운동을 다녀왔다.
이 후로는 브라이언을 만나 같이 또 맛있는 걸 해 먹었다.
피해자모드의 못난 모습을 보이는 나인데도
브라이언은 여전히 다정하게 나를 봐주고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주고 충분히 공감해주고
매번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줬다. 고마웠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일요일 퇴근 후 잠들기 전 누워서
일거리 뒤적이다 발견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의 게이밍 어텐던트 자리 지원을 하게되고,
이틀 후 연락 그 이틀 후 면접
그러고 그 다음 주 부터 출근을 하게된다.
원샷원킬! 지원서 한 군데 넣어 100:1 경쟁을 뚫고
바로 게이밍 어텐던트 이직? 재취업 성공하게 된다.
그렇게 새 회사 새 호텔에 일을 시작하면서
기존 회사 기존 호텔의 스트레스 받던 바 시프트를
반으로 줄였다.
보는 횟수를 줄이고 적당히 거리감이 생기니
버겁던 바텐더 일도 점점 밸런스가 맞춰지는 듯 했다.
이 후 브라이언과 100일을 맞이하고,
누나집으로 짧게 여행도 다녀오면서 브라이언과 더 돈독해졌다.
10-12월 :
새 호텔 적응 완료.
시큐리티 내 소문났다, 새로 들어온 애 마감 엄청 빠르다고.
메인 시큐리티는 스탑워치로 시간까지 재서 보여주더라.
매주 금요일 내가 근무할 때 마다 최고 매출을 찍어
라이센시와 제너럴매니저 모두에게도 럭키참으로 인정.
마지막 쿼터동안 목표액에 두 번이나 도달하여
다가오는 2월 게이밍 팀 회식까지 잡혔다.
듣자하니 5명인 팀에 3,000$ 준다고. 유후!
다른 소식으로는
기존 회사에서 나를 팀에서 쫓아낸 두 게이밍 매니저,
현재 매니저직에서 내려와 한 명은 캐쥬얼 스텝 다른 한 명은 파트타임 스텝으로 일하고 있더라.
둘 모두 나를 잘라낸 시점에서 고작 3개월 가는 거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3개월 갈 거면서 힘없는 스텝들을 그렇게 괴롭힌건가.
결국 내가 애쓰지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문제인가.
당시 굉장히 미웠는데 몇 개월 지난 시점에서 보니 고마운거다.
그곳에서 함께 하면서 늘 나는 대체될 수 있는 존재였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시 시프트 줄이겠다는 협박과 불이익을 당했다.
그들이 나를 쫓아내 준 덕분에,
나는 나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알아주고 높여주는 회사를 만나 더 좋은 팀과 함께 하고 있다.
드로잉 클래스는 학생수는 줄어도
안정적으로 이어져오고 있고, 나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
브라이언을 통해 브라이언 가족들과의 파티의 연속이었던 12월은
내 생에 가장 바쁘고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달 이었다.
다사다난했던 나의 소중한 2023년, 안녕!
2024년, 사랑이 넘치는 새해로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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